기록은 누구의 시선인가
실록의 조사 보고와 결안에는 당시 관청이 사건을 바라본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교회 약전은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전합니다. 서로 다른 기록을 함께 읽으며 날짜와 사건의 흐름, 인물의 선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23]
1791 · 제례 문제에서 정치적 논의로
진산사건은 제례와 신주 문제에서 출발해 조정의 정치적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일부 노론 신료와 남인 공서파 등의 입장이 맞물린 가운데 정조는 사건을 보고받고 처결했습니다.[25]
감영 이송과 처결의 순서
정조실록의 음력 11월 7일 기사는 전라 감사 정민시의 조사 보고와 조정의 논의를 기록합니다. 다음 날 기사에는 윤지충·권상연의 사형을 이미 결정했다는 하교가 나타납니다. 감영의 조사에서 조정의 보고와 처결로 이어지는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19]
윤지충과 권상연 · 같은 1791년 사건
1759년 진산에서 태어난 윤지충은 1787년 세례를 받았습니다. 1791년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천주교 예절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체포령 이후 피신했다가 숙부의 감금 소식을 듣고 진산 관아에 자수했으며,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어 12월 8일 전주 남문 밖에서 순교했습니다.[26]
1801 · 정순왕후의 하교와 윤지헌
순조 원년 음력 1월 10일 기록에는 대왕대비 정순왕후의 엄금 하교가 실려 있습니다. 정조 사후 수렴청정기에 일어난 신유박해 속에서 윤지헌은 전주와 한양의 조사를 거쳐 다시 전주로 이송되었고, 1801년 10월 24일 순교했습니다.[21]
기록 속 거점과 길의 풍경
사료에는 진산과 전주 감영, 한양 등 주요 이동 거점이 나타납니다. 지도는 이 거점들을 연결해 역사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영상의 산세와 길, 인물은 AI 창작 재현으로 순례의 정서를 전합니다.[24]
오늘, 그리고 2027 한국으로
역사 속 신앙의 기억은 오늘의 순례를 통해 희망과 연대로 이어집니다. 다양한 배경의 청년들이 함께 걸으며 서로를 만나는 2027년 한국의 창작 비전은 평화를 향한 소망을 담습니다.



